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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전시관

 

조선후기 경제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전국적인 화폐의 유통으로 상업을 비롯한 경제활동이 활발해 지고 동전을 대체할 수 있는 지불수단으로써 신용화폐인 환 및 어음이 활발히 사용되었다.

또한 객주 등의 새로운 금융제도가 출현하여 그 역할을 담당하며 발전해 갔다. 이외에도 중앙과 지방 상호간의 중요한 자금 유통방법인 외획, 개성상인들 사이에 행하여진 단기자금의 융통방법인 시변, 전당, 계, 차인 등의 금융형태가 존재하여 근대적 금융제도의 도입을 준비하였다.

근대은행의 출현

개항 이후 외국은행이 속속 우리나라에 진출하였다. 한국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금융기관은 1878년 개설된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이었다. 이후 계속되는 외국은행의 지점 설립은 우리나라 금융의 기초를 흔들어 놓았다. 이에 당시 우리나라 금융 선각자들은 민족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설립을 추진하였다.

1897년(고종 31년) 갑오경장 이후 조선은행, 한성은행, 대한은행이 민족자본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개점한지 1년도 안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1890년대에 설립된 대부분의 민족은행들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으나, 1899년 1월 30일 창립된 대한천일은행만은 민족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근대은행의 도입과정 속에서 국내상인의 노력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은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王)의 본(本)’을 창립이념으로 삼아 민족자본 육성을 통한 국가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하였다. ‘조선사람 이외에는 대한천일은행의 주식을 사고 팔 수 없다’고 명시하는 등 민족의 자존을 세우고 외세로부터 은행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또한 개성상인의 전통적 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을 이용해 장부를 표기하는 등 민족은행으로서 일반은행의 역할과 함께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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